HOME  >  마미유학센터카페

마미유학센터카페

예체능계의 미래를 생각하다
작성자 : 관리자(visualcanada@naver.com)   작성일 : 19.05.17   조회수 : 1358

 

아마도 모든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 흔히들 입시를 지옥이라 표현하는데

그 지옥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자녀들 이상으로

우리 부모님들 역시 혹독한 지옥의 시간을 견디어야 하고 보니

요즘은 자녀를 키우는 일이 예전보다 더더욱 힘들어졌습니다.

 

특히나 예체능을 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그 뒷바라지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든 자녀가 대동소이하겠지만

예체능으로 미래를 결정한 학생들은 공부 외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 훨씬 많기에

그들의 부모님들 또한 걱정거리가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부모님의 처지와 고통을 악용하는 사례 또한 빈번합니다.

 

 

최근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모 감독님이

명문대에 체육 특기자로 입학시켜 주는 조건으로

학생에게 5천만 원을 요구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는가 하면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이자 감독이었던 A씨는

자녀들을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시킬 수 있다며

학부모들에게 금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운동하는 자녀의 학부모로서는 자녀의 미래가 크게 바뀔지도 모를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감독의 말을 믿고 5천만 원을 넘겨준 학부모님도 계셨다고 하고

실제로 A씨는 금품을 건넨 부모의 자녀 위주로

주요 대회 경기 출전권을 주었다며 진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품 요구를 넘어서 개인 사리사욕을 위해

학부모님들을 이용하는 사건 또한 있었습니다.

 

리틀 야구단 감독 B씨는 관행적으로

리틀 야구단 학부모들로부터 상품권 및 유흥업소 비용,

더 나아가 성접대까지 받았다는 혐의로 현재 고소까지 당한 상황입니다.

B씨는 야구단 운영에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를 폭행했고

이에 항의한 학부모의 자녀는 야구단에서 퇴출당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비단 체육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술계에서도 이러한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후 내내 입시학원에서 실기 연습을 해야 하는 학생들 역시

학원 선생님들의 횡포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학생에게만 편파적으로 과잉지도를 하여 다른 학생으로부터

질투심을 유발시키며 일부러 한 학생을 고립시킨 후에

 

은밀하게 학생을 성추행한다던가,

예술계통에서의 본인의 인맥을 들먹이며

자신의 추행 사실을 폭로하면 학생의 앞길을 막겠다는 등의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본인의 위치를 권력 삼아 학생들에게 위협과 성추행을 일삼고,

자녀의 미래를 손에 쥐고 부모님에게 협박과 금품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피해자 부모님이나 피해 당사자들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혹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일들을 참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한 인내와 희생이 과연 자녀의 미래에

어떤 대가를 지불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데도 말입니다.

 

 

예체능을 목표로 하는 자녀를 두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돈은 돈대로 투자하고 몸과 마음은 누군가의 횡포에 의해 하루가 다르게 병들어 가면서

단지 미래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만 오롯이 버티기에는

그 길이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예체능 특기생에 대한 대단한 지원도 별로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해볼 때

그나마 버팀목이 되어주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끔은 불투명해 보일 뿐입니다.

 

더구나 암담한 사실은 이런 학생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더욱 그들의 편에서 지지해 주어야 마땅한 선배들인, 현재의 감독, 코치, 기타 선생님들이

학생과 그 가족들의 불안한 심리를 오히려 약점 삼아

본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악용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양적인 면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몇 명'이냐도 아니고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아닙니다.

내 자식의 인생이 달린 문제라서’, ‘내 꿈이 좌절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혹은 이 계통의 관행이니까라며

쉬쉬하고 묻어왔던 이런 은밀한 타협의 결과가

결국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어떤 쓰디쓴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뿌리내릴 곳이 있어야 자라서 독이 든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악이 자랄 수 없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몇몇 일탈을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래 지향적인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옳지 않음을 옳지 않다고 용기 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옳지 않은 자가 살아가기 힘든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곧 그런 사회적 토양에 뿌리내리고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10년 후,

달라진 우리들의 미래를 기쁘게 상상해 봅니다.

 

 

 

이전글 교권의 추락
다음글 조현병 (정신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