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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
작성자 : 관리자(visualcanada@naver.com)   작성일 : 17.09.19   조회수 : 1784

 

삶의 형태의 정답은 없습니다.

  

A가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사는 B.

그러나 정작 B 자신은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BC의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B에게 허용된 영역 안에선 불가능해 보이는 C의 삶을 동경합니다.

그러나 C는 삶이 피로하고 권태로울 뿐입니다.

모든 걸 벗어 던지고, A처럼 살고 싶습니다.

  

  

인간에겐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운명적인 슬픔으로 엮어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는 측은지심으로 피해자를 자처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공정치가 못해서

손안의 든 것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여,

그것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하게 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쉽게 상대적인 가치라고 말하면서

타인의 눈엔 부족함이 없이 다 갖춘 것 같은 사람 중에서

정작 그 누구도 제 안에서 충만하다고

행복한 목소리만을 내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만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잘 정의하지만,

그것을 지속해서 느낄 수 없는 불행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은 그러나,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권력적인 것이든.

 

이 얼마나 부조리한 존재일까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면서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못 참아내는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일까요?

그러나,

으로 보면 참 가여운 생각도 듭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손톱만큼의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없으면서

무작정 다른 사람의 사는 모양새를 흉내 내거나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걸 동경만 한다거나

상대적인 결핍에 대한 탓과 푸념만으로

일생을 탕진하는 동물이 인간 말고는 또 누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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