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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소식

아이와 함께하는 밴쿠버 정착기
작성자 : 관리자(visualcanada@naver.com)   작성일 : 2016-10-31   조회수 : 3397

 

 

 

 

낯설은 세상

 

 

6개월이 지났다.

터전을 옮긴다는 것이 이토록 많은 감정을

동시에 싣고 오는 것인 줄 몰랐다.

한 달은 잠들었던 것처럼 기억에 없다.

넘어졌다 잃어날 때

주섬주섬 충격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필요하듯

새로 터전을 일구는 시간 역시 꽤 걸렸다.

노상 훌쩍 자라는 게 서운했던 아이들에게

갑자기 빨리 철들기를 채근하게도 되었다.

짐을 나누어지고 싶었고

알아서 잘 정착하기를 바랐다.

더 솔직하게는

아이들의 상태까지 맘 써줄 여력조차 없었다.

부족한 영어로도 생활이 불편치는 않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켠은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하루하루가 보대꼈다. 

     


그럴 즈음 인연의 고리에 걸린 듯

헤이스팅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의 기회를 만났다.

한 달에 한번이니 고작 두세 번의 기회였다. 

약물에 중독된 거리의 부랑자들을 위해

함께 예배하고 음식을 준비해 나누는 일이다.

처음엔 내 아이들에게 해가될까

성큼 두려움이 앞섰다.

밴쿠버의 어두운 거리 헤이스팅은

수많은 사람들이 약물중독의 악순환을 번복하며

거리의 노숙자로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라 한다.

우리나라 서울역이 그랬던 것처럼

저마다 사연도 많고 거래도 있으며 소통도 있단다.

지난번 봉사 때 만난 캐나다 여성 한 명이 기억난다.

그녀의 이름은 애슐리다.

 

 

식사 배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뒤늦게 쫓기듯 문을 밀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아임 헝그리를 외친다.

다들 조금씩 그렇듯

마약을 하고 난 뒤려니

혹은 늘 그런 상태려니 치부하며

의례것 자리를 만들어 앉혔다.

이내 식사가 준비되어 그녀의 무릎에 놓여졌다.
그러나 그녀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파 허기진 게 아니라

다른 허기로 통증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조그맣고 마른 몸을 웅크리더니

금세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선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고 눈물이 멈춘 틈엔

하소연이 연실 끊이지 않았다.

 

 

영어로 듣는 하소연이 좀 그리 낯설지 않았다.

딸이 셋이 있는데 모두 멀리 떨어져 살고

못 본지 여러 해가 지났고

자신은 아이들을 돌볼 수 없으며

더 이상 찾을 수도 없단다.

게다가 요즘 자기와 사는 남자는 심심하면 자기를 때려서

너무 힘들다는 얘기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의 구부러진 손가락 사이로

추적추적 묻어나고 있었다.

음식은 손도 대질 않았다.

 

 

우린 그녀를 위해 잠깐 기도를 해주었다.

고맙다며 진정하는 듯하더니

계속 같은 얘기를 늘어놓는다.

더 이상 그녀를 해결해줄 수 없었고

우리는 모두 한 둘씩

그녀에게서 떨어져나가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우리는 음식을 준비해주고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와 청소로 일을 마치면

그날의 거창한 봉사활동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그녀, 애슐리는 그렇게 그곳을 떠났다.

어쩌면 그녀는 자식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일탈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일탈의 훌륭한 핑계가

되어주기도 할 테고

일탈에 대한 두려움이

그리움을 더욱 간절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서고금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더니

곁을 지킨다고 모두 훌륭한 부모가 아니듯

결별하여 자란다는 것이 반드시

불행한 일도 아닐텐데

들꽃도 산짐승도 홀로 우뚝

제 몫으로 자라나는 일도 빈번하다.

밴쿠버에서 우리는 어떤 교육을 꿈꾸고 있을까?

아이들을 자유롭게 편안하게 키우고 싶다는

공공연한 약속들은

어떤 색깔을 만들어 가고 있을까?

밴쿠버에서도 한국아이들이 다니는

학원들은 모두 성업 중이다.

학원비도 비싸고 숙제도 많으며

스트레스도 없지 않다.

그래도 밴쿠버니까 한국보다 편안하리라 생각들 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소중하다.

상처를 입히면 곧 미안해지고

야단치고 나면 돌아서서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헤이스팅에서 봉사를 하는 날은

아이들이 제법 능동적이다.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아닌데

꼬박 서너 시간을 잘도 버틴다.

한국에서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를 강의했던

여러 해 동안 우러남의 미학을 경험하는

아이를 흔하게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밴쿠버에 온 한국 아이들은 흔들리며

살고 있는 헤이스팅 거리의

수많은 노숙자들을 기꺼이 안아주고 있었다.

 

어쩌면 타국에서 산다는 일은

목적이 어디에 있든 집을 잃은 사람들과

일맥상통하는 헛헛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외로움을 고뇌할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내 아이들에겐 학원을 보내지 않고

허기진 속을 채울 시간 그리고 그 속에

담을 것을 찾을 시간을 주기로 해본다.

그것이 내가 애슐리처럼

배고프지 않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밴쿠버 교육신문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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