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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소식

아이와 함께하는 밴쿠버 정착기 -
작성자 : 관리자(visualcanada@naver.com)   작성일 : 2016-11-23   조회수 : 2732

 

 

 

 

 

우직함의 미덕

 

 

디지털이 주는 수혜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디지털 기기들은

불과 수십 년 전엔 상상 속

혹은 영화 속에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디지털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했던가.

처음엔 편리하고 신기하기만 했던 것이

이제는 생활에 깊이 뿌리내려

때로 심한 골칫덩이가 되곤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어울릴 때도 있다.

가정에서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자녀와 큰소리가 오가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얼마 전 나의 휴대폰에 문제가 생겼다.

지문인식 기능이 있다기에 딸아이더러

잠금장치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만약을 대비해

비밀번호를 저장해 놓아야한다고 해서

딸아이는 평소 사용하는

나의 비밀번호로 저장을 했다.


그날 저녁 영어 라이팅 클래스 수업이 있었다.

영어 단어실력이 미비해

휴대폰에서 영어 단어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엄지손가락을 몇차례 반복해도

휴대폰이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리셋을 해버렸다.

그리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분명 내가 일러준 비밀번호를

여러 번 눌렀지만 락은 풀리지 않았다.

세 시간 반 수업을 온통 휴대폰에

신경 쓰느라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흘려보냈다.


비밀번호가 잘못된 것 같아

집에 오자마자 딸아이에게

비밀번호가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내가 불러준 대로 설정을 했다는 한다.

갑자기 그동안 딸아이가 덤벙대다

저지른 모든 실수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마침내 입에서

주체할 수없는 막말들이 터져 나왔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어떻게 그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하니?",

"또 덤벙거리고 딴 생각하다

엉뚱한 번호를 누른 게 뻔해!"

딸아이는 “죄송해요.”만 연실 내받았다.


나는 컴퓨터를 뒤져

밴쿠버에 있는 삼성 AS센터를 찾아냈다.

다행히 리치몬드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고

그날 밤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등교를 하자마자

바로 리치몬드로 향했다

50분을 내처 달려 찾아간 주소지에 삼성은 없었다.

이미 철수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어찌나 황망하던지......,

돌아오는 길에 빛나던 햇살만 아니었다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처음 캐나다를 담은 사진,
인연의 끈들

게다가 그 모질던 시간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핸드폰에는 잠겨버렸으니 불안하기만 했다.

집에 돌아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컴퓨터를 연결한 뒤 여기저기에 문의를 했더니

로히드의 한인 타운에

수리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데이터는 되살릴 수 없다고 한다.

공초 (공장초기화)밖에는 방법이 없고

잠금장치를 풀어주는 값이 20불이라고 한다.

20불까지 날릴 수는 없었다.

그날 밤 혼자 컴퓨터 블로거들의

가르침을 따라 폰을 초기화해버렸다.

그렇게 모든 추억과 시간을 송두리째

날리고 나니 차라리 후련했다.

진작 미련을 버렸다면 고생은 덜 했을 텐데.. 

며칠 동안 딸아이를 몰아세웠던 내가 부끄러웠다.


집집마다 디지털의 혁명 속에 노예처럼 휘둘린다.

아이들의 폰을 뺏거나 폰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한다.

규칙을 정해보기도 하고

갖가지 타협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 힘든 타협 후에

우리는 자녀들 몰래 자신의 SNS를 둘러보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구글링을 한다.

우리도 이미 중독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아날로그 세대다.

공중전화의 설렘을 기억하고

어긋난 약속 때문에

한 두 시간을 기다려 본 기억이 있으며

손 편지의 소중함을 똑똑히 기억한다.

우리는 그때 불편함에 순종했으며

그 시대를 낭만으로 회고한다.


불현 듯 이곳 학교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교실마다 두꺼운 사전이 학생 수만큼 비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각기 다른 브랜드의 사전까지 말이다.

또 학기 초 준비물 중에는

영어사전이 포함되어 있어 새삼스러웠다.

과연 학기 중에 그 사전들을 활용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단어 검색에 두꺼운 사전을 활용하고

뜻을 이해할 만한 어구와 유사 어를 찾아가며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아주 놀랐다.


예전 구세대들 사이엔

얇은 종이로 제본된 엣센스영한사전을

면면히 암기하고 암기한 쪽을

씹어 삼키며 공부했다는 무용담도 있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다.

모국에서 내 아이들이 학교에

국어사전을 가져가는 때는

초등학교에서 두어 번이었다.

사전 찾기를 다루는 5학년 경으로 기억한다,

우리 아이들은 비슷한말 반대말도

교과서에 도식적으로

정해두고 외우기를 종용받는다.

스스로 사전을 찾아가며

어휘의 뜻을 이해하고

비슷한말 반대되는 말을 찾는 일은

평생 해볼 일이 없다.

그저 교과서에서 정해준 풀이와

낱말을 잘 암기한 뒤

답안을 작성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환경이 달라졌다.

캐나다에서 사전을 찾는 진풍경은

내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물론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커뮤니티센터에서

두꺼운 사전을 펼쳐 어휘의 뜻을 찾고

이해하는 모습은 어쩐지 숙연하다.

그들도 똑같이 디지털 시대의 혜택을 누리며

첨단의 폰을 휴대하고 다닌다.

캐나다의 청소년들도 휴대폰 사용을 두고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을 배우고 익히는데

사전을 사용하는 우직함은

그들만이 유지해온 정서일 것이다.

교육이란 바로 이러한 고집에서

바로 서고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휴대폰을 잠깐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함 때문에

딸아이를 몰아세웠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 교실에 넘쳐나던 영어사전을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나를 돌아보며

잠시 우리나라 교육과 비교하는

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밴쿠버교육신문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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