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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소식

아이와 함께하는 밴쿠버 정착기(관계맺기)
작성자 : 관리자(visualcanada@naver.com)   작성일 : 2016-12-08   조회수 : 2730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2009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에

미국은 ‘unfriend'(친구를 삭제하다.) 를 올렸었다.

이미 사귄 친구를

모든 기억 안에서 지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다.

참으로 무서운 결심이다.

우리처럼 본국과 타국을 넘나드는 이방인들에게

큰 혜택을 주고 있는 이른 바

한국산 카카오 톡은

이러한 관계 맺기의 대표적인 어플이다.

연락처를 입력하는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은

카카오 톡 앱 안으로 쏘옥 기어든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운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이 누워서 떡 먹기다.

오히려 너무 쉽게 연결되어

간혹 절절한 그리움이 사그라질 정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언제든 소식을 전하기 싫은 상대를

숨기거나 그것도 모자랄 만큼

진저리나는 사람은 아예

차단그룹으로 가둬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혹여 그가 나를 찾더라도

알아서 소식을 차단해 준다는 얘기다.

 

관계 맺기란 예전에는 알고 지내며

차츰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한 관계가 발전하여 친구가 되고

특별함으로 마음 속에 자리 잡는것이 순서였다면

이제는 일단 알게 되는 순간 친구로 맺어진 후에

차츰 즐겨 찾는 친구나 일반적인 친구

혹은 숨겨두는 친구,

더러는 아예 차단하는 친구로 변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내가 누군가에게

차단된 친구가 되어 있을까를

예측하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이것이 요즘의 관계 맺기다.

따라서 ‘unfriend'는 아주 실용적인 단어인 셈이다.

 

밴쿠버 생활이 8개월째다.

이제 나도 여기 좀 안다 싶을 정도가 됐다.

그 동안 사귄, 아니 알게 된 사람들도 꽤 된다.

그 중엔 밴쿠버 교민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처지의 유학 맘들

그리고 캐네디언, 중국과 이란,

러시아 게다가 이름도 생경한

각국의 사람들을 알게 됐다.

다민족 국가인 캐나다는 세계인의 장터다.

이곳에서 생전 처음 듣는 나라의 사람과 만나

그 나라 음식 또는 문화를 얘기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니까.

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만 해도 그

저 인사만 나누었던 이들이

지금은 집을 드나들게도 되고,

식사를 함께하기도 하며

몇몇 모임의 일원으로

정기적으로 만나는 이도 생겼다.

이토록 많은 이방인들과

어우러져 사는 나의 모습은

일면 생소하기 짝이 없다.

일각에서는 나의 성격이

친밀도가 높아 외국생활하기에

안성맞춤이라 부추겨주었다.

 

그래도 나는 날마다 외롭다.

할 일이 빼곡한 날은 그런 날대로,

한가한 날은

또 그 나름으로 적적하기 이를 데 없다.

간혹은 자식들 문제로

토닥거리기도 하고

나이 먹는 고초를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술 한 잔 앞에 두고

두런두런 속내를 털어놓던

사람들이 없어서 그럴 것이고,

덜 풀어놓은 보따리를 한 편에 두고 사는

느낌이 불안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 정도면 하고 으스대보았자

고개를 돌리면 다들 알아서

제법 찾아먹는 곳이 바로 이곳 밴쿠버 땅이다.

누가 더 하고 못하고도 없고

서로 깊이 관심도 없으며

공짜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곳의

클래스메이트처럼 오면 반갑고

안 나오면 그런가보다 하는.

그래도 친구는 본능처럼 그리운 법.

그래서 서툰 관계의 시도는

한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렇게 알게 된 내 친구 이네사......,

짧은 커트머리에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

고집스럽게 아래로

씰룩거리는 입술모양하며

외까풀의까만 눈동자는

몽골의 후예임을 짐작케 했다.

수줍게 커뮤니티센터의 영어수업에

첫발을 내딛은 지 며칠 안 될 때다.

로빈슨 스트리트에서 하는

수요일 수업에서 나는 처음 그녀를 만났다.

뭐라고들 떠드는지 운 좋으면

알아듣고 못 알아먹으면 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시간 때우기가 쉽지 않을 때였다.

강한 러시아 억양이지만

제법 의사소통이 완벽한 그녀의 영어실력은

그런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처음부터 그녀에게 끌렸다.

그녀도 나처럼 매일 다른 클래스를

옮겨 다니며 영어수업에 참여했다.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도

상 30여분 일찍 도착해서

내 자리까지 맡아놓는 수고를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내가 집까지 데려다준다 해도

한사코 나를 만류했다.

배려가 몸에 배인 천성도 매우 그녀다웠다.

이네사는 카자흐스탄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곳의 은행에서 오래 근무한 엘리트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한국의 핏줄을 가지고 있다.

 

어찌어찌 흘러 한국의 뿌리가

먼 타국 카자흐스탄에 뿌리를 내려

몇 세대에 걸친 긴 인연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번은 함께 점심을 먹다가

자신이 김해 김 씨라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일러준

조상의 뿌리를 올곧게 기억하며

살아온 그녀가 그날 성큼

내 마음속으로 들어 온 날이다.

그렇게 우리는 밤낮으로 문자를 주고 받았고

매일 영어수업 후에

밴쿠버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이곳 사람들이 알려주는 지역 축제는 물론이고

소규모 피크닉, 유명한 식당 등을 함께 다녔다.

그리고 무덥던 여름

녀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또 한 번의 이별을 했다.

남편과의 이별의 상처가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준비되지 않은 

또 한 번의 이별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 보름간은 남편의 방문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그럭저럭 흘렀다.

그러나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부터

나의 영어실력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으며

더 이상 누구와도

친구가 되길 원치 않고 있었다.

언제나 나를 칭찬해주던 친구,

당당함으로 무장된 채

주저 않고 싶은 순간마다 자극을 주고

용기를 주던 그녀의 부재는

내게 한동안 치명적이었다.

그 사이 나는 카카오 톡에 몇 명이 숨겨졌고

나도 모르는 사이 차단된 채로

내팽개쳐졌을 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맺어지기를 바라며 지냈지만

분리되어지지 않는 나와 타인의 과제들은

때로 미움을 만들고 열등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은 법이라 했던가.

지난주에 이네사가 다시 밴쿠버를 찾아왔다.

3개월의 짧은 기간을 머물 예정이란다.

우린 벌써 한 피크닉 모임에도 함께 참석했다.

단짝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러 다닌다.

나는 이네사가 있어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마치 내 열등감의 혹부리를

그녀가 싹둑 잘라주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오늘도 누군가는 나를 차단하고 있고

누군가는 나를

새 친구로 입력하고 있을지 모른다.

타인을 의식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다.

러나 진정한 친구를 얻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 버려질 용기, 송두리째 삭제될 용기,

그리고 온전히 기억될 용기, 그래서 미움 받을 용기.

 

 

(밴쿠버 교육신문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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