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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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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의 캐나다 일상
작성자 : 관리자(visualcanada@naver.com)   작성일 : 2023-09-11   조회수 :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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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 어렵사리 찾아온 아이였기 때문에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어쩌면 제 결혼 축하 때보다 더 많은 축하를 받았던 것 같네요.

딸은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 속도가 조금 느린 걸 걱정하긴 했지만

아이의 건강을 무엇보다 우선시한 우리 부부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고부터였습니다.

 

여타 다른 아이들처럼 처음 등원 당시엔 유치원에 가길 싫어하고

적응하는 것에 애를 먹는구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가 유치원에 혼자 구석에 웅크려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도 전혀 상대하지 않는 선생님의 말씀에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못을 박은 것은 아이의 행동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유치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따로 수업을 해주시거나,

놀아주시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의자에 잘 앉아있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거나

산만하게 주위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만지고 

넘어뜨리기까지 하여 고장 낸 것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희 부부는 유치원에 불려 가게 되었고

원장 선생님과 아이 반 선생님과 함께 상담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은 교실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아이의 문제행동을 보여주시며

병원 상담 치료를 진지하게 권하셨고

저희 또한 이것이 그저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상담 이후 유치원 등원을 멈추고 병원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선 ADHD와 범자폐스펙트럼의 진단받았지만

이런 쪽에서는 지식이 없었던 터라 어디부터 알아봐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면서

약을 먹으면 바로 낫는 여타 다른 병들과는 달라 

그저 멍하니 아이의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약물 치료보다는 행동 교정과 상담을 위주로 받길 원했지만

그래서는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며 소량이라도 약물치료를 권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담을 동반한 약물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싫어하는 유치원에 가지 않고 다른 곳을 가다 보니 

아이도 나들이 기분으로 나섰던 것 같지만

점점 병원에서 길어지고 귀찮은 상담을 하고

다녀오고 나면 무조건 늘어나는 약들을 알아챈 이후로는 

유치원 때보다 더 격한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병원 앞에서 울기도 하고 상담 시간에 입을 꾹 다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병원 가는 날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만 되면 꾀병을 부리거나

옷장 안에 숨어 아이를 끌고 나오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려 

결국 예약 시간에 맞춰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큰 병원이 주는 압박감이나 약의 거부감 때문이라고 생각해

개인병원이나 여타 다른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우리 아이에겐 전부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싫어하는 아이와 매일 지옥과 같은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럽게 유학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유학 얘기를 듣자마자 이 사람이 정말 우리 아이를 포기했나 싶어 처음으로 언성 높여 화를 냈지만

그런 저를 차분하게 진정시키며 우리 아이와 같은 아이들이 유학을 가서 긍정적인 효과를 본 사례들과

아이가 한국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로 나가게 된다면 어떤 좋은 영향을 받게 될지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아이를 떠나보낸다는 생각에 무시하기만 했지만, 끊임없이 저를 설득하는 남편에 백기를 들고

남편이 찾아봤다는 유학 프로그램과 전문적으로 운영한다는 유학원 사이트까지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결국 남편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 유학 상담을 오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상담을 온 그날까지도 불안함은 여전해 사전상담만 3~4시간을 보냈지만

약물치료에 반감을 품었던 저에게 상담과 자극 놀이 치료를 진행하는 쪽으로 추천해 주셨고

원장님은 경계심이 많은 저를 이해해 주시고 본인의 일인 것처럼 매사에 진지하게 임해주셨습니다.

유학행을 결정하게 된 건 원장님의 이런 진실함에

이곳이라면 내 아이를 맡겨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크게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반대하실 줄 알았던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저희 생각을 존중해 주셨고

주변 지인분들도 걱정의 쓴소리보다는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덕분에 저희 부부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유학 준비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떠난 유학행은 처음엔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소통의 문제는 좁혀지기 어려웠고

낯선 환경에 잔뜩 긴장한 딸은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두 번을 내리 앓아누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치료에 들어서자 조금 주변을 경계하던 딸은

이내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열고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말수도 적고 집단생활에 잘 녹아들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특히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과 설명을 해도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 못 하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선생님들은 아이의 돌발행동들을 유연하게 대처해 주시고

어쩌면 실례일지도 모르는 언행들을 왜 해서는 안 되는지 

눈높이에 맞춰 언행을 고칠 때까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걸 올바른 선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는 건 정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가 진행될수록 저도 불안한 마음을 쉽게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처럼

우리 아이는 캐나다에서 치료를 시작한 6개월에서부터 눈에 띄게 변화하였습니다.

막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과 얘기는커녕,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무서워했지만

이젠 먼저 옆집 이웃에게 말을 걸 정도로 붙임성이 좋아졌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위축되었는지 아는 단어나 대답할 수 있는 말이 나와도

늘 제 뒤에 꼭 붙어 우물쭈물하기만 했었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뒤로 숨거나 하는 것 없이 

당당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고

손짓, 발짓으로 다른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이어가다 이젠 학교도 충분히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선생님과 상담을 한 후

8살이 되던 해, 집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같은 또래 아이들이 가득 찬 학교생활은 또 다른지 낯을 가리는 듯싶었지만

금방 친구들을 곧잘 사귀어 노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유치원 안 작은 반에서 조차 적응하지 못하고

구석에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있었던 아이를 생각하며 울컥 눈물이 차올랐지만

낯선 땅에서 씩씩하게 적응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에 저도 어깨를 펴게 되었습니다.

 

아직 치료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아이는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나아지고 있고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는 주말에는 

친구들과 놀러 나가기 바쁜 활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가끔 한국에서의 생활이 생각나곤 하지만 이젠 이곳에서의 생활이 너무도 충만해

남편과 저는 캐나다 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유학이라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아이도 수백 번 고민하고 내리는 결정인데 치료 목적으로 가는 유학이라면

더더욱 불안하고 막막하기만 하단 생각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부모인 우리가 확실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과정이 어떻든, 나중에 내 아이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영향을 받을지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의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고,

지금이라도 한 발짝 나서서 상담이라도 받아보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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